김소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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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金素月, 1902-1934, 본성명 김정식 廷湜)

1902 평안북도 龜城郡 西山面 仁旺洞 외가에서 父 김성도 母 장경숙 사이에서 장자로
출생. 백일 후에 평북 定州郡 郭山面 南端洞 569번지 본가로 돌아옴. 처음엔 이름을
정식으로 지었으나, 후일 정식으로 고쳐 씀.

1904 아버지가 처가로 가던 중 정주와 곽산 사이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인부들에게
폭행을 당함. 그 후유증으로 아버지가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켜 조부 김상주의 훈도 아
래 성장하면서 한문을 배움.

1905 둘째 숙모 계희영에게서 「심청전」,「장화홍련전」, 「춘향전」,「옥루몽」,「
삼국지」등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였으며 이것들을 다시 구술하는데 매우 재간을 보
였다고 함.

1907 조부가 사랑에 독서당을 개설하고 훈장을 초빙하여 한문을 가르쳤다고 함.

1909 평북 정주군 곽산면 남단동에 위치한 사립 남산 학교에 입학. 이 때 사귄 친구로
는 최인수, 오명환, 김상림, 김청호, 김상적, 김상호, 김민도, 김상술, 김명호, 김남
순, 김상섭, 김의도, 한경순이 있음.
2월 23일 어머니 장경숙이 소월의 동생 仁姐를 낳음.

1913 남산동에 퍼진 열병(장질부사)으로 소월은 학교에 못가고 4개월간 앓음.

1915 4년제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오산 학교 중학부에 입학. 재학 시절 성적
은 우수했고, 이 때 그의 스승 김억을 만나 지도를 받으면서 시를 쓰기 시작.

1916 구성군 평지동의 南陽 홍氏 明熙의 딸 丹實과 결혼.

1917 『김소원 시선집』(1970.7)에 의하면 1917년 9월에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먼후일」이 이때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

1918 정주읍 주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1919 <3·1운동>으로 오산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줄업 예정자로 졸업장을 받음. 장녀
龜生 출생함.

1920 2월-시 「浪人의 봄」,「夜의 雨滴」,「그리워」,「春崗」,「午過의 泣」을 素月
이란 필명으로 발표(《創造》5호) 2월 하순경-발족한 조선시가협회에 가입하여 동인으
로 활동함. 이 협회의 구성원은 춘원, 주요한, 변영로, 김안서, 김소월, 박영희 등 10

이었음.
7월-투고형식으로 「맛나려는 심사」,「먼後日」,「거츤풀 흐트러진 모래洞으로」,「
죽으면?」(《學生界》1호). 필명을 쓰지 않고 본명을 씀.
10월-꽁트「春朝」를 발표. 이 작품 속에는 시가 한편 끼어있음. (「無題」·1) 차녀
귀원 출생

1921 1월-「이한밤」발표.(《學生界》6호)
4월 9일-「그 山 위」,「바람의 봄」,「보밤」,「붉은 湖水」,「俗謠」,「풀따기」,「
黃燭불」(《동아일보》)
4월 27일-「門犬吠」,「沙鷄月」,「銀臺燭」,「一夜雨」,「春採詞」「緘口」(《동아일
보》) 이 때 발표한 작품 6편은 시조임.
6월 8일-「舊面」,「둥군해」,「하늘」,「꿈」,「깁픠밋던 心誠」(《동아일보》)
6월 14일-「바다」(《동아일보》)

1922 1월-「개아미」,「꿈」,「金잔듸」,「달마지」,「첫치마」,「黃燭불」,「부헝새
」,「樹芽」,「엄마야 누나야」,「제비」 (《개벽》19호)
2월-「꿈꾼 그 녯날」,「내집」,「밤-濟物浦에서」,「새벽」,「닭은 꼬꾸요」(《개벽
》20호)
4월-배재고보 5년에 편입. 「등불과 마조 안젓스랴면」,「봄밤」(《개벽》22호)
6월-「맘에 속읫 사람」,「公園의 밤」,「悅樂」,「오는 봄」(《개벽》 24호)
7월-「진달래꽃」,「江村」,「제비」,「將別里」,「개여울」,「孤寂한 날」(《개벽》2
5호)
8월-「풀따기」,「그 山우」,「깁픠밋든 心誠」,「님과 벗」,「먼后日」,「바다」,「
가는 봄 三月」,「가을」,「니 젓든 맘」,「옛날」(《개벽》 26호)
10월-소설 「함박 눈」 발표(《개벽》 28호)
11월-산문시 「깊흔 구멍」,「꿈자리」발표.(《개벽》29호)

1923 1월-월탄 박종화의 1922년 年評인 「文壇 一年을 追憶하며」에서 「먼후일」,「
진달래꽃」,「제비」,「將別里」,「孤寂한 날」,「江村」 등을 거론하며 평함.
2월-「님의 노래」,「녯이악이」(《개벽》32호)
3월-「길손」,「달밤」,「봄바람」,「비단 안개」,「깁고픈 言約」,「접동새」 등의
시편과 번역소설 「떠도라가는 계집」(모파상 作)을 교지 《배재》2호에 발표. 배재
고등 보통학교 제 4회 졸업
4월-일본 동경대학 상대에 진학하기 위하여 도일함.
5월-「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못니도록 생각이 나겠지요」,「예전엔 미쳐 몰낫
서요」,「자나 깨나 안즈나 서나」,「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개벽》35호) 박종화
가 《백조》2호 「嗚呼 我文壇」이라는 글의 말미에 월평을 첨가하고 소월을 평함.
8월-「구름」,「樂天」,「어려듯고 자라 배와 내가 안 것은」,「往十里」(《신천지》9
호)
9월-關東大震災 사건으로 귀국, 할아버지의 반대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함. 이
후 4개월간 서울 청진동에 묵는 동안 羅彬, 廉想涉과 사귐.
10월-「朔州龜城」,「山」,「가는 길」(《개벽》40호)
12월-《개벽》5월호에 발표했던 소월시 5편에 대해 김억이「文壇의 一年」이라는 연평
에서 평함.

1924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도우면서 고향에 머무름. 영변을 다녀온 후 김동인,
김찬영, 임장화 등과 함께 《영대》 동인이 됨. 장남 俊鎬 출생.
7월 21일-「서로 믿음」(《동아일보》)
10월-「밧고랑 우헤서」,「生과 死」,「漁人」(영대 3호) 주요한의 「文藝時評」(《조
선문단》창간호)에 소월에 대한 평.
11월 24일-「나무리벌 노래」,「俚謠」,「車와 船」을 흰달이란 필명으로 발표(《동아
일보》)
12월-「不稱錘秤」,「巷前哀唱명쥬딸기」(《영대》 4호)

1925 「꽃燭불 켜는밤」,「無信」,「녯님을 따라가다 꿈깨여 歎息 힘이라」(《영대》
5호) 「저녁 때」,「신앙」(《개벽》55호) 「無心」](《신여성》18호)
1일-「萬里城」,「千里萬里」,「옷과 밥과 自由」,「남의 나라땅」, 「배」,「옷」(《
동아일보》)
4일-「기막덤불」(《동아일보》) 김억은 「詩壇 一年」이라는 신년 문단 동정에서 소
월을 평함.
2월 2일-번역시「寒食」,「벗마을」(《동아일보》)
4월 13일- 변역시「春曉」, 창작시 「自轉車」(《동아일보》) 「물마름」,「실제」(《
조선문단》 7호) 김기진이 「현시단의 시인」이라는 평론에서 소월 시를 평함.
5월-시론 「詩魂」(《개벽》 59호)
7월-「그 사람에게」(《조선문단》 10호)
10월-「오일밤 산보」,「비소리」,「불탄자리」(《조선문단》 12호)
12월 26일-시집『진달래꽃』을 배분사에서 上梓.

1926 차남 은호 출생
1월 1일-「돈과 밥과 맘과 들」(《동아일보》)
1월 2일-이광수가 「朝鮮文壇의 現狀과 將來」라는 글에서 소월을 평함.
3월- 譯詩 「밤가마귀」,「봄」,「蘇小小의 무덤」,(조선문단14호)
6월-「둥근해」,「바다까의 밤」,「봄못」,「잠」,「저녁」,「첫눈」,「흘러가는 물이
라도 맘이 물이면」(조선문단 17호)
7월 28일-평안북도 구성군 南市에 동아일보 구성 지국을 개설하고 지국장으로 취임.

1927 3월 14일-동아일보 지국을 폐쇄
7월-「팔벼개 노래」(《假面》)

1928 7월-「나무리벌 노래」,「배」,「옷과 밥과 自由」를 약간 손질해서 재록(《白雉
》2호)

1929 2월 「조선 시가협회」회원으로 가입. 이 협회의 문인 회원은 이광수, 주요한,
변영로, 김억, 김소월, 박영희 등 10인이 었고, 저속한 가요의 가사를 혁신하기 위해
조직됨.
5월-저급생활산문시 「길차부」(《문예공론》 1호)
6월-「斷章·1」(《문예공론》2호)
7월-「斷章·2」(《문예공론》3호)
12월 12일에서 14일까지 조선일보에 김동인의 「내가 본 시인 김소월군을 논함」이라
는 평이 연재됨.

1930 4월-「금잔듸」(《삼천리》에 재록)

1931 2월-「孤獨」,「드리는 노래」(《신여성》)
8월-제목 미상의 동요 1편이 《어린이》에 개재됨.
11월-「맛나려는 心思」재록(《삼천리》)

1932 3남 정호 출생

1934 8월-「生과 돈과 死」,「제, 엠, 에스」,「돈타령」, 譯詩「長于行·1」,「長于
行·2」,「나홍곡」,「송원이사안서」,
      「伊州歌·1」,「伊州歌·2」(《삼천리》 53호)
9월 21일-추석 전날 밤에 김억에게 절망적인 심회를 호소하는 편지를 씀.
11월-「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신인문학》)「건강한 잠」,「고약」,「기원」,「고
향」,「기회」,「상쾌한 아츰」,「의와 정의심」(《삼천리》 56호)
12월 24일-오전 8시 돌연히 사망한 시체로 발견됨.
12월 30일-《조선중앙일보》에 2단 기사로 「민요시인 소월 김정식씨 돌연 별세」라는
 머릿제목과 함께 10행의 해설기사가 났고 그의 유작 「금잔듸」가 소개됨.
12월 30일-《동아일보》에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희미한 사진과 함께 짤막한 사망 기
사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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